뉴 미디어의 한계와 전통적 저널리즘의 역할과 가치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의 분석>
  조회:  8,947   등록 일자: September 21   카테고리: 
이란 대통령 선거 후 외국 언론기관들의 기자들을 추방하고 일부 이란 저널리스트들을 구속하는 등 이란 집권 당국의 언론 탄압이 심해진 상황에서 ‘트위터’같은 ‘뉴 소셜 미디어’가 이란의 반정부 시위자들의 활동을 외부 세계에 알릴뿐 아니라 반정부 항의 운동을 조직하는 데도 힘이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Roger Cohen)은 9월 10일자 컬럼에서 이러한 뉴 미디어의 기능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전통적인 미디어의 역할의 중요성은 여전히 중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한 주장의 핵심 부분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저널리즘인가? 아니다. 사실 저널리즘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뉴 소셜 미디어’가 산출하는 원자재의 홍수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다. ‘클레이 셔키’(Clay Shirky)의 적절한 표현을 빌리면. 뉴 소셜 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의 홍수는 “히어 컴즈 에브리보디”(Here Comes Everybody: 모든 사람들이 아무나 한마디씩 하는 상황)식의 홍수라고 부를 수 있다. 정반대라고 말하는 이유는 저널리즘은 증류(蒸溜) 작업이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은 어떤 상황을 가장 진실되고 가장 공정하며 가장 생생하면서 완전에 가까운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목적을 추구하기 위하여 원자재 – 원자재가 말로 되어 있건 영상으로 되어 있건 간에 – 중에서 적절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But is it journalism? No. In fact journalism in many ways is the antithesis of the “Here Comes Everybody” — Clay Shirky’s good phrase — deluge of raw material that new social media deliver. For journalism is distillation. It is a choice of material, whether in words or image, made in pursuit of presenting the truest and fairest, most vivid and complete representation of a situation.) 그는 전통적 저널리즘의 기자가 현장에 있음으로써 비로소 발휘할 수 있는 선택 기능을 설명하고, 새 테크놀로지가 기자들을 현장에 파견하려는 의욕이나 거기에 필요한 재원을 줄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내가 묘사한 것 같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기자가) 현장에 가있을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선택 작업의 일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란, 예를 들어 기자가 호흡하는 공기, 기자 귀에 들어오는 소리들, 새의 날개처럼 공포에 떠는 눈을 스치고 지나가는 어두움의 그림자이며, 이런 것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 가지고는 감지하거나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In the making of the choices I have described, presence is required. Because part of the choice lies in something ineffable — the air you breathe, the sounds you hear, the shadow light as a bird’s wing that falls across fearful eyes — something that cannot be seized or rendered at a distance.) (번역ⓒ2009 USA Brie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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